버스도 예약이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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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195회 작성일 24-05-23 11:12 SNS 공유 :본문
버스도 예약이 되나요?
행복나눔재단 등 4개 기관
대전시 버스예약시스템 개발
휠체어 장애인 이동성 향상
휠체어 장애인 이희진(55)씨는 외출 전 애플리케이션(APP) 3개를 확인한다. 각각 장애인 콜택시, 지하철, 버스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앱이다. 요즘 제일 자주 사용하는 건 ‘위버스(webus)’. 휠체어로 탑승할 수 있는 저상버스를 예약할 수 있다. 출발지와 도착지를 입력하면 실시간으로 이용가능한 저상버스 노선과 소요 시간이 뜬다. 이 가운데 적합한 버스를 골라 ‘탑승 예약’ 버튼을 누르면 버스기사에게 탑승 위치가 전송된다. 버스에는 “다음 정거장에서 저상버스 리프트가 사용될 예정이니, 원활한 탑승을 위해 통행로를 확보해달라”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위버스를 사용하고 이씨의 일상은 크게 바뀌었다. 우선 버스기사가 정류장에 서 있는 이씨를 못 보고 지나치는 일이 줄었다. 버스가 주 이동 수단이 되니 장애인 콜택시 배차를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외출을 포기하거나 약속 시간에 늦지 않아도 된다.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지하철역까지 서둘러 갈 필요도 없다. 이씨는 “출퇴근 시간이라도 겹치면 버스를 10번 중 한두 번만 겨우 탈 수 있었는데, 이제는 10번 중 7번은 탄다”며 “버스 이용이 쉬워지면서 사람들을 더 자주 만나고, 활동 반경도 넓어졌다”고 말했다.
‘저상버스 예약 시스템’은 지난해 7월 대전에서 전국 최초로 도입된 서비스다. “전국 지자체가 앞다퉈 저상버스 수를 늘리고 있는데, 왜 휠체어 장애인의 버스 탑승률은 그대로일까?”라는 질문에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행복나눔재단을 중심으로 위즈온협동조합, 대전광역시, 신협사회공헌재단 등 4개 기관이 머리를 맞댔다. 단순한 방법으로 장애인의 버스 접근성을 높일 방안을 고민하다가 나온 아이디어가 ‘버스 예약 시스템 개발’이었다.
당사자가 개발자로 참여했더니
네 기관은 2021년 12월부터 솔루션을 찾기 위해 본격적으로 협력했다. 행복나눔재단은 전체 프로젝트 기획과 운영을 맡았다. 장애인 당사자들이 개발자로 일하는 위즈온협동조합에서는 위버스 앱 개발을 시작했다. 대전시는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버스 공공데이터를 오픈하고 정류장 등 인프라 개선을 지원하기로 했고, 신협사회공헌재단은 기금 후원과 임직원 자원봉사로 힘을 보탰다. 지금은 대전 시내 15개 운수회사까지 버스기사를 대상으로 내부 교육을 실시하는 등 협조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위버스 앱은 장애인이 겪는 사소한 고충까지 고려한 기능이 많다. 장애인 당사자들이 직접 개발을 맡은 덕분이다. 개발자들은 지체장애인은 손을 자유롭게 움직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점을 반영해 엄지손가락 하나로, 5회 이내 터치로 앱의 대부분 기능을 이용할 수 있도록 사용자경험(UX)과 인터페이스(UI)를 구성했다. 불편 신고도 앱 안에서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된다. 민원이 접수되면 위즈온협동조합이 바로 대전시와 행복나눔재단, 버스 운수업체 담당자에게 전달해 현장의 문제가 신속히 개선되도록 한다.
기술로만 풀 수 없는 문제들도 있었다. 기존에 정부가 네이버나 카카오 지도 앱에 제공하던 데이터에는 저상버스의 실시간 운행 정보가 포함되지 않았다. 미리 정해진 시간표를 기준으로 정보가 표시되다 보니 현장 상황에 따라 변경되는 저상버스 운행 현황은 사용자가 알 수 없었다. 저상버스가 곧 도착한다는 정보를 앱으로 확인하고 정류장에 가도 일반 버스가 도착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런 문제는 대전시의 협조로 해결됐다. 대전시는 실시간 저상버스 정보가 들어있는 버스관리시스템(BMS) 데이터를 위즈온협동조합에 오픈했다. 지자체가 민간기관에 BMS 권한을 열어준 건 이례적인 일이다. 신지혜 대전시 버스정책과 주무관은 “정보화 부서와 협력해 철저한 보안성 검토 절차를 거친 후 공개를 결정했다”며 “데이터 송수신을 위한 보안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는지 검증하고 위즈온협동조합 사무실에 방문해 보안 교육을 별도로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장애인 버스 이용률 56배 증가
지난 10개월 동안 대전 휠체어 장애인의 버스 이용 횟수는 총 738회. 한 달 평균 70회가 넘는다. 시스템 운영 전이었던 2022년 연 13회였던 것과 비교하면 이용률은 약 56배 증가했다. 행복나눔재단이 지난달 휠체어 사용자 21명을 대상으로 저상버스 활용에 관한 설문조사와 FGI(집단 심층 인터뷰)를 실시한 결과, 휠체어 장애인들은 저상버스 예약 시스템을 이용하고 나서 외출 전 이동 경로와 수단을 탐색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평균 37분에서 10분으로 단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외출 빈도는 주 3일에서 5일로 1.7배 증가했다. 이상현 행복나눔재단 세상파일팀 본부장은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협업하는 ‘콜렉티브 임팩트’ 방식으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올해 말까지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금액은 총 3억8000만원. 행복나눔재단과 신협사회공헌재단이 함께 지원한다. 프로젝트는 2026년까지 진행된다. 남은 기간에는 버스 환승 경로 추천과 지하철과 기차 등 다른 대중교통과의 연동 기능을 시스템 안에 추가할 예정이다. 행복나눔재단이 개발한 ‘휠비’ 앱과의 연계도 검토 중이다. 휠비는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는 안전한 도보 통행로를 안내해주는 내비게이션 앱이다. 휠비 앱에는 대전시 신협 직원 112명이 지난해 7~8월 자원봉사로 취합한 휠체어용 경사로, 장애인 화장실 등에 대한 데이터 3만5342개도 포함된다.
최종 목표는 대전의 시스템을 전국으로 확산하는 것이다. 오영진 위즈온협동조합 이사는 “장애인들이 다른 지역에서도 대전에서처럼 자유롭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다른 지자체에서도 대전시 모델을 참고해 버스 예약 시스템 도입을 시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