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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를 위한 장애인 거주시설, 왜 또 다른 도가니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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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4회 작성일 26-02-27 14:06 SNS 공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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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를 위한 장애인 거주시설, 왜 또 다른 도가니가 되었나


용산역에서 전장연 회원들이 '색동원 인권침해, 해답은 탈시설' 선전전을 하고 있다.

용산역에서 전장연 회원들이 '색동원 인권침해, 해답은 탈시설' 선전전을 하고 있다


2025년 3월 인천 강화의 장애인 거주 시설인 색동원에서 시설장이 여성 입소자를 대상으로 성폭력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피해자는 퇴소자 2명을 포함해 19명이었고 이 가운데 13명은 부모나 형제가 없는 무연고자였다.


가족이 없는 이들에게 시설은 유일한 생활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들을 보호해야 할 시설에서 성폭력이 발생했고 26명의 직원들은 이를 은폐했다. 장애인복지법상 사회복지시설 종사자는 학대 사실을 인지하면 즉시 신고를 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직원들은 시설장의 친인척이었기에 단 한 명도 신고를 하지 않았다.

20년 지나 재발한 '도가니' 


이 사건은 낯설지가 않다. 2005년 광주인화학교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 이른바 '도가니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광주인화학교 교직원들은 장애가 있는 학생들을 성폭행했고 이는 오랫동안 은폐되었다. 장애인을 보호해야 할 기관에서 발생한 성폭력이 구조적으로 은폐되었다는 점에서 인천 색동원 사건과 유사성을 보이는 것이다.
 

도가니 사건 이후 사회적 공분이 확산했고 재발 방지를 위해 법과 제도 개선이 이루어졌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개정되어 장애인 대상 성범죄의 공소 시효가 폐지되고 처벌 또한 강화되었으며 친고죄 또한 폐지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 개선에도 20년이 지나 유사한 사건이 다시 발생했다. 장애인 거주 시설같이 외부 접근과 감시가 제한된 폐쇄적 공간에서는 제도 개선과 형량 강화만으로 범죄를 막기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색동원 시설장이 다수의 입소자에게 성폭력을 저질렀는데도 범죄를 감출 수 있었던 이유는 장애인 인권 모니터링 구조에 있었다. 색동원은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공공시설이 아닌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민간 장애인 거주 시설이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외부 감독이 이루어지더라도 시설 운영과 내부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를 감시하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민간 장애인 거주 시설의 구조적 문제는 이전부터 국회와 감독기관을 통해 반복적으로 지적되어 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일부 시설에서 이사회와 종사자가 가족과 친인척 중심으로 구성되는 등 운영의 폐쇄성이 문제로 지적되었고, 회계 투명성과 내부 견제 기능의 한계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이처럼 국가가 민간 법인에 위탁하는 구조에서는 시설 운영 권한이 내부에 집중되기 쉽다. 특히 가족과 친인척 중심으로 운영되는 경우 내부 견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고, 외부 감독 또한 정기적인 점검에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입소자 대부분이 가족과 단절된 무연고 장애인일 경우, 인권 침해를 외부에 알리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다. 그 결과, 시설 내부에서 발생한 범죄는 쉽게 드러나지 않고 은폐될 가능성이 커진다.

실제로 안성의 한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직원에 의한 성폭력 범죄가 발생해 수사가 진행되었는데도, 같은 해 실시된 시설 평가에서 해당 시설이 최우수 등급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이는 현행 장애인 거주 시설 평가와 감독 체계가 실질적인 인권 보호와 운영 실태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폐쇄적인 구조에서 유사 사건 되풀이
 

장애인 거주 시설은 구조적 특성상 인권 침해와 범죄에 취약한 환경을 갖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시설은 대부분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공공시설이 아니라 사회복지법인 등 민간 법인이 운영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우리나라 복지 체계가 국가 중심이 아니라 민간 위탁 방식으로 형성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는 19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확대되었다. 당시 국가는 재정과 인력의 한계로 증가하는 복지 수요를 직접 감당하기 어려웠고, 그 결과 장애인과 노인 등 사회적 소외 계층을 위한 복지서비스를 민간 법인에 위탁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시설이 개인이나 법인 중심으로 설립·운영되었고, 운영 권한이 시설 내부에 집중되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운영 구조는 효율성을 높였을지언정, 시설 운영을 폐쇄적으로 만들고 외부의 개입과 감시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형식적으로는 행정 기관의 감독을 받지만 실질적인 재정 운영, 입소자의 인권까지는 제대로 감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 결과 장애인을 보호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시설은 폭력을 은폐하기 쉬운 구조로 남게 되었다.

결국 색동원 사건은 한 시설장의 도덕적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의 장애인 복지체계가 지닌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폐쇄된 공간에서 권력이 집중되고 이를 견제할 외부의 감시가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 한, 폭력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소설가 공지영은 광주인화학교 사건을 바탕으로 한 소설 제목을 도가니라고 지었다. 도가니는 쇳물을 녹이는 용광로를 뜻한다. 모든 것이 녹아 내리는 그 공간은 장애인을 보호해야 할 사회가 무너져 내리는 현실을 상징하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도가니는 20년이 지난 지금 또 다시 반복되었다.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은 여전히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가족과 사회로부터 단절된 장애인에게 시설은 삶의 전부이자 유일한 공간이다. 그 공간이 안전하지 않다면 장애인은 폭력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
 

이제 우리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가해자를 처벌하는 데 그치는 것을 넘어, 그러한 사건이 가능했던 구조 자체를 돌아봐야 한다. 시설 운영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외부의 독립적인 감시 체계를 실질적으로 작동시키며, 장애인을 보호의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도가니는 과거의 사건으로 남지 않을 것이다.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에서 장애인의 권리가 침해되는 현실은, 또 다른 이름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다.


출처 - 연합뉴스